서울에서 KTX를 타고 한 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강원도 평창. 기차에서 내리자 청정한 바람이 두 볼을 간지럽힌다. 사방을 둘러싼 높은 산과 켜켜이 쌓인 능선. 눈길이 닿는 곳마다 펼쳐진 밭과 울창한 나무들까지. 시선을 돌릴 때마다 반겨주는 천혜의 자연경관이 이곳이 왜 ‘한국의 알프스’인지 말해주는 듯하다.
평창은 전체 면적의 65%가 해발 700m 이상의 고원지대다. 또한, 아름다운 문장과 토속적인 묘사로 오랜 시간 사랑받은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 생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또 하나, 평창하면 뺄 수 없는 게 있으니 태백산맥과 차령산맥 사이에 위치한 지형적 특성이 주는 ‘바람’이다. 사계절 내내 빠른 바람이 부는 덕에 평창은 풍력 발전소를 세우기에 최적의 장소다.
평창역 앞에서 동계 올림픽의 여운을 상기시키는 마스코트 반디, 수호와 인사를 나누고 본격적인 여행을 출발했다. 월정사 전나무숲부터 효석문화마을, 하늘과 맞닿아 있는 풍력 발전소 등에 발자국을 냈다. 청정한 바람이 복잡했던 머리 속에 맑게 불어왔다.
오롯이 자연을 만나는 길 ‘월정사 전나무숲’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천년의 숲길’로 불리는 오대산 국립공원의 ‘월정사 전나무숲’이다. 일주문을 지나 월정사를 향해 걷다 보면 1km에 달하는 울창한 전나무숲길을 만날 수 있다. 하늘을 뒤덮을 듯 쭉 뻗은 전나무가 바람에 스치우며 자연의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곳에 사람들의 분주함을 찾아볼 수 없다. 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 숲길을 뛰어다니는 다람쥐와 더불어 숲 옆에 흐르는 오대천에는 멸종 위기 동물인 수달이 유유자적 자연을 즐기고 있을 뿐.
약 1,000년 전 심은 아홉의 전나무가 현재 1,800 그루에 달하며 거대한 숲을 만들었다. 나무의 평균 수령이 83년인 것에 비춰볼 때 그 동안 얼마나 많은 나무들이 자라고 사라지길 반복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370년된 최고령 나무도 긴 시간 이곳을 지키는 중이다. 몸통에 팔을 둘러보니 과연 한 품에 안을 수 없을 만큼 두꺼웠다. 한 그루당 연간 7.6kg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는데, 그 동안 이 월정사 전나무숲을 통해 흡수된 탄소의 양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월정사 전나무숲에서 만난 다람쥐
하늘 높게 자란 전나무의 모습
월정사 전나무숲과 오대천
‘메밀꽃 필 무렵’의 허생원과 함께 거니는 문학의 숲
전나무숲길을 뒤로한 채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실제 배경지인 봉평면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 날로 치면 이곳저곳을 다니며 물건을 파는 장사꾼을 뜻하는 ‘장돌뱅이’ 허 생원과 우연히 만난 젊은 장돌뱅이 동이의 일대기를 담은 작품은 아름다운 문장과 토속적인 묘사 및 서사로 잘 알려져 있다.
우선 곳곳에 소설 속 이야기를 새긴 비석이 자리한 ‘효석 문학의 숲’을 찾았다. 찬찬히 글귀를 읽으며 허 생원이 달빛 아래 메밀꽃 밭에서 회상한 물레방앗간, 그가 빠졌던 연못 등을 산책했다. 장돌뱅이들의 삶과 애환, 허생원과 동이의 이야기가 가득한 문학의 숲을 구경하다 보니 마치 소설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차로 5분 정도 떨어진 곳에는 ‘효석문화마을’에는 이효석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이효석 문학관과 이효석 생가가 꾸며져 있었다. 입구에 있는 커다란 당나귀 모양의 전망대와 바람에 힘차게 돌아가는 바람개비가 사진의 멋진 배경이 됐다. 가을에는 소금을 뿌린 듯 장관을 이루는 메밀꽃을 볼 수 있다고도 한다.
효석 문화마을 입구 당나귀 전망대
언덕을 가득 메운 바람개비
효석문학의숲 표지판
해발 700m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 ‘청산 육상풍력 발전단지’
효석 문학의 숲에서 청태산 방향으로 차로 15분 정도 달리다 보면 산 위에 거대한 바람개비가 모습을 드러낸다. 오늘의 최종 도착지인 ‘청산 육상풍력 발전단지’다. SK E&S와 동성이 공동 개발한 이곳은 총 22MW 규모의 풍력발전기 6기가 2021년 1월부터 상업 운전을 시작했다. 청산 육상풍력에서 생산하는 청정 에너지는 평창군 1만 8,000여 세대가 일년 내내 사용할 수 있을 정도다.
평창이 청산 육상풍력 발전단지로 낙점된 데는 지리적인 요인이 크게 자리한다. 태백산맥의 서쪽인 영서 지역으로 해발 700m 이상의 고원지대에다 바람이 많고 서남풍이 일정하게 불어 풍력 발전에 최적인 장소이기 때문이다. 평창의 연평균 풍속은 초속 3.9m이며 청산 육상풍력 발전기 높이에서는 초속 6.7m의 강한 바람이 분다.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최소 풍속이 약 초속 4m인 것을 감안하면 왜 평창이 풍력 발전 단지 설립의 최적 장소인지 알 수 있다.
풍력 발전기의 높이는 자그마치 117m에 달한다. 이는 40층 높이의 건물과 비슷한 수준이다. 길이 60m, 개당 15톤에 이르는 세 개의 거대한 날개가 웅장하게 돌아가며 위용을 과시한다. 여러가지 색이 채색되는 낮과 달리 밤에는 또 다른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평창 밤하늘을 수놓는 별과 함께 어우러진 풍력 발전소의 모습이 무척 매력적이다.
새벽녘 청산 육상풍력 발전단지
청정한 바람과 마주한 풍력발전기
청산 육상풍력발전단지의 전경
늦은 밤 청산 육상풍력 발전단지의 모습
맑은 공기와 푸른 하늘을 지키는 풍력 에너지
풍력 발전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꼭 필요한 에너지원이다. 평창에 부는 청정 바람이 다시금 평창의 맑은 공기와 푸른 하늘을 지키고 있는 것. 실제 청산 육상풍력 발전단지는 연간 2만 6,000톤의 CO₂ 저감 효과를 내고 있다. 이는 70년 수령의 소나무 약 3,400여 그루를 심는 것과 동일한 효과다. 앞서 다녀온 월정사 전나무숲의 약 2배 수준이기도 하다.
바람만 분다면 언제든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해가 뜨는 낮이나, 별이 뜨는 밤에도 전력 생산이 가능하다. 넓은 설치 면적이 필요한 태양광 발전에 비해 단위 면적당 발전량이 크다는 점 역시 육상풍력의 장점이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평창
월정사 전나무숲이 지닌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 이를 생생히 담아낸 문학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이 살아 숨 쉬는 곳, 평창. 평창은 천천히 사색하고 여유 있게 숨을 고를 수 있는 곳이었다. 또한 사시사철 한결같이 부는 바람이 인간과 공생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청정한 바람이 청산 육상풍력 발전단지에 세차게 분다. 이곳을 여행하면 그동안 잊고 있었던 자연의 소중함과 환경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평창이 간직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지속가능한 깨끗한 풍력 에너지가 되어 우리에게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