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터: 찰나의 순간] 도심 한가운데서 역사와 자연을 만나다, 위례

복잡한 서울을 벗어나 위례로 향했다. 출근길 사람들로 가득 찬 지하철에서 내리자 번잡했던 도시의 풍경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조용히 흐르는 하천과 호수, 잘 꾸며놓은 푸른 공원이 펼쳐진다. 안락한 휴식을 선사하는 아파트 숲과 청정한 자연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모습이 신도시 특유의 깔끔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위례는 서울시 송파구와 경기도 성남시, 하남시 등 세 도시를 모두 포함하는 독특한 곳이다. 과거 그린벨트였던 곳에 조성된 신도시이기 때문에 수려한 자연경관을 지녔다. 최근에는 위례 신도시로 많이 알려졌지만 사실 위례는 백제의 첫 도읍지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도 등장하는 유서 깊은 곳이다. 도시 개발 당시 고구려 무덤과 백제 유물이 많이 발견되기도 했다.

바쁜 일상에 잠시 여유를 안겨주는 이곳, 위례를 돌아봤다. 조정‧카누 경기장이 있는 미사경정공원부터 백제 역사의 흔적이 있는 위례역사수변공원과 웅장한 남한산성, 미사호수공원, 위례 신도시의 난방과 전기를 책임지는 위례 열병합발전소까지 자연과 도심이 어우러진 곳, 위례의 다양한 매력을 만났다.

핑크뮬리가 손짓하는 미사경정공원

늦가을의 정취를 느끼기 위해 가장 먼저 미사경정공원을 찾았다. 이른 아침 햇살이 푸른 호수 위에 반짝 빛난다. 색색의 옷으로 갈아입은 단풍나무와 바람에 서걱거리는 이파리 소리, 새들의 지저귐을 듣다 보니 어느새 복잡했던 머릿속이 맑아지고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 옆으로 조정‧카누경기장에서 유유히 물 위를 가르며 노를 젓는 조정 선수들이 지나간다. 찰나의 순간, 이곳 미사경정공원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호수를 따라 한참을 걷다 보니 저 멀리 핑크빛 물결이 손짓한다. 미사경정공원의 랜드마크 핑크뮬리 군락지다. 이내 불어온 바람결에 안개처럼 흩날리는 핑크뮬리를 가만히 바라본다. 손을 뻗으면 따스한 핑크빛에 물들 것 같다. 여기저기 핑크뮬리를 사진으로 남기려는 사람들이 북적인다. 추억을 담는 그들의 행복함이 느껴져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백제 역사가 흐르는 곳, 위례역사수변공원

핑크뮬리를 뒤로한 채 차로 20분 정도 달려 위례역사수변공원에 도착했다. 위례라는 지명이 백제 왕조의 도성에서 유래된 것처럼 위례 곳곳에서 백제 역사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백제전통테마공원으로 꾸며진 위례역사수변공원은 그래서 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공원을 가로지르는 창곡천을 따라 수변 산책로를 걷는다. 눈길 닿는 곳마다 백제 무령왕릉 금관 장식, 정림사지 오층 석탑 등 백제의 유적들을 연상시키는 조형물이 있어 눈이 즐겁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삼국시대의 백제로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공원을 돌아보다 범상치 않은 유적지를 만났다. 고구려의 유물인 성남 창곡동유적 1호 횡혈식석실묘[1]다. 삼국시대의 고구려가 한강 이남까지 진출했다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라니, 위례역사수변공원에서 백제와 고구려를 모두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1] 외부로 통하는 길을 만들어 묘지 출입이 가능한 방 형태로 조성한 무덤

높다란 성곽에 묻어있는 역사의 흔적, 남한산성

백제를 떠나 또 다른 역사를 만나기 위해 서둘러 남한산성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차를 타고 꼬불꼬불하고 가파른 산길을 따라 올라가길 몇 분이 지났을까.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되는 웅장한 남한산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남한산성(사적 제57호)은 서울을 남북으로 지키는 산성중 하나로 신라 문무왕 때 쌓은 주장성(成)의 옛터를 조선시대 1626년(인조 4년)에 축성한 것이다. 높이는 해발 480m로, 서울 남산의 2배가 넘는 높고 험준한 산세에 지어 방어력을 높였다. 또한 12km가 넘는 성곽 둘레에 많은 백성이 모여 살아 ‘산 위의 도시’라고 불렸다고 한다. 전쟁 시 임금이 대피하는 곳으로도 쓰였기 때문에 성안에는 관아와 창고부터 국가 유사시를 대비한 모든 시설을 갖추었다.

남한산성 4대 대문중 가장 규모가 큰 남문 앞에 섰다. 사대문 가운데 유일하게 현판이 남아있어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문이다. 남문을 지나 그 옆으로 난 성곽을 따라 올라간다. 어느새 발아래가 까마득하다. 끝도 없이 펼쳐진 성곽을 바라보니 그 옛날 중국, 일본 등 외적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을 선조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가을밤 낭만이 흐르는 미사호수공원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 오늘의 마지막 여행지인 미사 호수 공원으로 향했다. 망월천을 넓혀 인공 호수를 만들어 조성한 미사호수공원은 일상에 지친 사람들의 쉼터 혹은 힐링 장소로 사랑받는 곳이다.

밤이 깊어지자 형형색색 화려한 조명을 밝힌 상망교가 낮과는 또 다른 매력을 전한다. 잔잔하게 흐르는 물과 물에 반사된 화려한 불빛들이 어우러져 밤이 한층 더 낭만적으로 변했다. 낭만에 흠뻑 취해 호수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산책로를 걸어본다. 곳곳에 음악 분수, 바닥 분수가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도심 속 여유를 몸소 느끼는 시간이다.

도시와 하나 되는 위례 열병합발전소

SK E&S의 ‘위례열병합발전소’는 위례 신도시의 중심부에 위치해있다. 아파트 사이를 달리다 우뚝 솟은 전망대 같은 건물을 만날 수 있는데 그곳이 바로 인근 지역에 열을 공급해 주는 위례 열병합발전소다.

언뜻 외관만 봐서는 이곳이 발전소라고 전혀 연상되지 않는다. 오히려 업무용 빌딩에 더 가까울 정도다. 흔히 발전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굴뚝이나 거대한 파이프도 찾아볼 수 없다. 외관의 색상조차 인근 아파트의 색상과 비슷하게 도색되어 그런 느낌을 더한다.

2017년 상업 운전을 시작한 ‘위례열병합발전소’는 SK E&S가 직도입한 LNG(천연가스)를 이용해 전기와 열을 생산하는 곳이다. 전기를 만들고 남은 열로 온수를 데워 위례 신도시 가정에 지역난방을 공급한다.

열과 전기를 동시에 생산하는 발전소라 규모가 클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아파트 단지 사이에 끼어 있을 만큼 크지 않은 규모다. 비록 덩치는 작지만 그 역할은 크다. ‘위례 열병합발전소’는 4인 가구 기준 약 11만 가구가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전기를 생산할 수 있으며, 위례신도시 4만 1692가구, 서울 거여·마천동 1만 1187세대 난방을 책임지는 고효율 발전소라고 한다.

‘위례 열병합발전소’는 서울시, 하남시, 성남시 세 지역에 걸쳐있기 때문에 열 공급권도 하나의 시에만 수혜를 주지 않고 세 지역에 모두 공급 중이다. 인구 밀집 지역인 신도시에 전력과 지역난방용 열을 동시에 공급하며 제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이다. 하남시에는 SK E&S의 또 다른 열병합발전소가 있는데 이곳은 하남 미사지구, 강일 1·2지구, 고덕지구 등에 난방을 공급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위례 열병합발전소’를 거닐며 구석구석을 살펴본다. 우뚝 솟아 마치 전망대처럼 보이던 것은 건물 25층 높이에 달하는 굴뚝 스택(Stack)이었다. 스택을 자세히 보기 위해 내부로 직접 들어가 봤다. 전기와 열을 생산하기 위해 힘차게 돌아가는 가스 터빈을 직접 보니 일상에서 당연하게 느껴왔던 전기가 누군가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임을 되새길 수 있었다.

전력 소비량이 많은 도심의 한복판에 발전소가 있는데 그 흔한 전깃줄 등 송전시설이 눈에 띄지 않는다. 알고 보니 땅 아래 지중 선로를 통해 인근 변전소로 전력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바로 미관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다. 이뿐만이 아니다. ‘위례 열병합발전소’는 첨단 기술로 오염물질을 잡고, 폐열 재활용 발전 효율을 80%로 높이는 등 자연과 도심의 어우러짐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 해나가고 있다. ‘위례 열병합발전소’가 지역사회와 어우러지며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이유다.

가볍게 떠나 마음을 가득 채우고 돌아올 수 있는 곳, 위례

한 해의 끝이 다가오는 요즘, 위례는 바쁜 일상에서 잠시 여유를 느끼고 싶을 때 부담 없이 떠날 수 있는 곳이다. 코끝 시린 찬 바람이 불 때, 쌀알같이 작은 눈송이가 내릴 때 백제 시대의 숨결을 품고 역사 그리고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위례를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역사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해 온 위례와 함께 다사다난했던 우리의 한 해 마무리하는 것도 참 근사할 일일 테니 말이다.

여기에 따뜻한 열과 전기를 전해주는 위례 열병합발전소까지 더해지니 이보다 더 특별한 여행지가 없다. 자연과 도시, 청정함과 편리함과 공존하는 위례의 다채로운 매력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