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터: 찰나의 순간] 하늘과 바람과 별, 그리고 광양

차창 밖으로 청명한 하늘과 파란 바다가 펼쳐진다. 한적한 시골 풍경이 어느 순간 거대한 발전소와 제철소, 항구에 쌓인 컨테이너와 분주하게 오고 가는 화물선으로 바뀐다. 도무지 같은 지역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전혀 다른 매력을 지닌 이곳, 광양의 풍경이다. 예부터 김, 소금을 생산하는 어촌지역이었던 광양은 발전소, 제철소가 들어서면서 전라남도의 대표적인 산업단지로 자리매김했다. 24시간 가동하는 산업 시설로 밤 풍경도 달라졌다. 광양의 낮과 밤이 모두 아름다운 이유다.

광양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時(시)’로 잘 알려진 민족 시인 윤동주와도 남다른 인연을 가진 곳이다. 일제강점기 때 그의 자필 유고 시집을 보존한 정영욱 가옥(등록문화재 제341호)이 이곳, 광양에 있다. 윤동주의 시를 품고 지켜낸 광양이 없었다면 그의 주옥같은 시들은 지금처럼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에 하얀 구름이 수놓아져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떠올리며 이번 여정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따라가봤다. 하늘과 바람이 이끄는 데로, 반짝이는 별과 아름다운 시를 따라 발을 내디뎠다.

‘시’를 품어 빛을 전한 정병욱 가옥 & 섬진강 망덕포구

윤동주 시인의 흔적을 찾아 섬진강변을 달려 망덕포구에 도착했다. 작은 어선들이 정박해있는 망덕포구는 섬진강의 물길이 끝나고 바다와 만나는 곳으로 전어, 재첩, 벚굴 등 해산물이 풍부하다. 매년 가을이면 전어축제가 열려 이 일대가 떠들썩해진다. 망덕포구 앞에서 섬진강을 따라 쭉 이어진 산책로를 걷는다. 그 끝에 다다르면 민족 시인 윤동주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정병욱 가옥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윤동주 시인이 자필로 쓴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時(시)’가 숨겨져 보존되었던 곳으로 문학사적 의미를 지닌다. 윤동주 시인은 1941년 일제의 탄압으로 시집 발간이 좌절되자 그 원고를 친우인 정병욱에게 건넸고, 정병욱의 어머니는 일제의 감시를 피해 집 마룻바닥을 뜯어 원고를 보관했다고 전해진다. 윤동주 시인이 순절하고 광복 후 1948년에 출판돼 비로소 빛을 보게 되었다.

가옥 입구에 들어서니 가장 먼저 윤동주 시인의 육필 원고가 눈에 띈다. 그 옆으로 유고를 보관했던 장소를 그대로 재현해놓은 곳이 마련돼있다. 일제강점기에 시로 투쟁했던 윤동주 시인과 저항기의 등불이 된 민족 문학을 끝까지 지키고 세상에 알린 정병욱과 그 가족의 노력이 깃든 현장을 직접 마주하니 가슴 한편이 뭉클해진다.

‘하늘’을 담은 호수, 와우생태호수공원

정병욱 가옥을 떠나 광양항 방향으로 차로 달리길 15분 남짓, 어느 순간 시야가 탁 트이고 주변이 고요해진다. 차에서 내리자 파란 하늘을 그대로 담은 호수와 울창한 나무가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농업용수를 위해 조성된 호수를 공원으로 탈바꿈한 와우생태호수공원이다. 자연을 그대로 옮겨놓은 경관은 물론 풍력발전기로 만든 전기로만 운영된다고 하니 말 그대로 환경친화적인 공간이다.

호수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수변 산책로를 거닐어 본다. 꽃을 피운 수련과 물억새, 물가의 수양버들과 새의 지저귐을 들으며 걷다 보니 시간이 멈춘 듯한 기분이다. 나무 구름다리를 건너 호수 가운데에 자리한 행운의 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평화로운 한때를 만끽하니 바쁜 일상 속에서 잊고 있었던 여유를 비로소 되찾았다.

‘바람’에도 흔들림 없는 이순신 장군의 기개, 이순신대교

한적했던 와우생태호수공원의 품을 벗어나 이번엔 바다 쪽으로 향했다. 저 멀리 광양과 여수를 잇는 이순신대교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양쪽 주탑의 높이는 270m로 서울 남산타워나 63빌딩보다 더 높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탄생 연도인 1545년에 맞춰 주탑과 주탑 사이의 거리를 1,545m로 지었다.

이순신대교를 좀 더 가까이 볼 수 있다는 이순신대교 홍보관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전망대에 오르니 저 멀리 가야산과 백운산, 구봉산 전망대, 광양 컨테이너 부두까지 한눈에 담긴다. 광양이 품고 있는 남해바다가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이자 이순신 장군이 순국한 노량해전이 벌어진 곳이라고 하니 절로 숙연해진다. 이제 보니 이순신대교의 위풍당당한 모습이 이순신 장군의 기개를 닮은 듯하다.

‘별 헤는 밤, 불 밝힌 ‘광양천연가스발전소’

이순신대교를 건너자 주변 풍경이 한순간에 달라진다. 여러 공장과 제철소가 자리한 광양국가산업단지에 들어선 것이다. 밤이 되면 이 일대는 산업시설을 밝히는 불빛들로 색다른 야경을 선사한다. 불빛들을 따라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니 저 멀리 하늘 사이로 우뚝 솟은 4개의 굴뚝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SK E&S의 ‘광양천연가스발전소’다.

한눈에 봐도 그 규모가 놀랍다. 부지 크기만 총 약 20만㎡로 서울 광화문 광장 11개를 합친 크기와 맞먹는다. 차를 타고 ‘광양천연가스발전소’의 곳곳을 둘러봤다. 먼저 건물 20층 높이에 달하는 거대한 굴뚝, 스택(Stack)이 눈길을 끈다. 네모반듯한 다른 발전소 모습과 달리 수많은 파이프 배관과 발전소 기기들이 외부에 그대로 노출된 아웃도어 방식의 독특한 외관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여기에 커다란 터빈의 모습과 힘차게 돌아가는 터빈 가동 소리가 더해지니 이곳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절로 와닿는다.

이곳에서 한 시간 동안 생산하는 전력량(약 80만kWh)으로도 약 2,600가구가 한 달간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이라고 하니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다.

2006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광양천연가스발전소는 “우리나라 최초의 LNG(액화천연가스) 직도입 발전소”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LNG 직도입이란 한국가스공사(KOGAS)에만 허가되어 있던 천연가스 수입 권한을 민간기업에게도 열어준 것으로, 이를 통해 민간 발전소들이 다변화된 수입처로부터 경쟁력 있는 가격에 천연가스를 수입할 수 있게 되었다. 대부분의 에너지원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현실 속에서 광양천연가스발전소는 직도입 연료를 통해 전기를 보다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안보에 기여하고 국민의 전기 요금 부담을 줄이는데 힘을 보태고 있는 것이다.

이곳이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광양천연가스발전소는 호남지역 유일의 ‘우선공급발전소’로 지정되어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발생 시 큰 역할을 한다. 대규모 정전사태로 발전소 가동이 일시적으로 중단되더라도, 주변 수력발전소로부터 최우선으로 전기를 공급받아 발전소를 재가동해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이 전기가 다른 발전소들이 재가동하는데 사용되면서, 단계적으로 호남지역의 전기 공급이 정상화된다. 광양천연가스발전소의 존재 의미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호남지역의 불을 밝히는 것이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저녁 어스름이 짙어지자 발전소의 불이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한다. 타오르는 붉은 낙조와 발전소의 모습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곧 어둠이 짙게 깔리고 발전소의 불빛이 반짝이는 별이 되어 밤하늘을 수놓는다. 16년 동안 묵묵히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는 발전소를 보고 있으니 앞서 봤던 윤동주 시인과 정병욱 가옥에 얽힌 이야기가 떠오른다. 흔들림 없이 자신만의 신념을 지켜나가는 노력은 예나 지금이나 어두운 곳의 한줄기 빛이 된다. ‘광양천연가스발전소’ 또한 오늘도,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늘과 바람, 별과 시가 가득한 그곳, 광양

때론 청정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때론 우리나라 산업을 이끄는 최첨단 산업단지의 모습으로 변화무쌍한 매력을 전해주는 곳, 광양. 위풍당당한 이순신대교와 한 폭의 그림 같은 와우생태호수공원, 밤바다의 낭만을 더해주는 야경과 하늘의 별처럼 밝게 빛나는 광양천연가스발전소까지 광양의 매력은 끝이 없다.

윤동주의 시를 품고 부활시킨 도시답게 광양은 기품 있고 또 활기차다. 그의 시처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따라 흘러가듯 여행하면 광양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다. 광양의 낮과 밤은 오늘도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