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ㅣ 곽재식 숭실사이버대 환경안전공학과 교수·작가
에너지 안보라는 말이 있다. 에너지 자원을 순조롭게 들여올 수 없으면 나라에 큰 피해가 생기니까 에너지 자원에 대한 정책이 나라를 지키는 안보정책 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를 품고 있는 말이다. 그런데 에너지 안보라는 말이 그냥 겁주려는 말이나 구호로 외치자고 만든 표현만은 아니다. 에너지 안보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유행한 배경에는 진짜 안보 문제와 직결된 사건이 있었다.
때는 197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동 여러 나라들과 이스라엘 사이에는 해묵은 반목이 이어지고 있었다. 20세기 중반에는 세 차례의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세 번의 전쟁은 대체로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이 났다. 영토도 작고 인구도 훨씬 은 이스라엘에게 번번히 승리하지 못하자, 이스라엘의 맞수였던 이집트는 깊은 원한을 품고 있었다. 결국 이집트는 복수를 위해 차근차근 전쟁을 준비했고, 다시 한번 전쟁이 일어나는데 이것이 바로 제4차 중동전쟁이다.
이집트를 중심으로 한 중동 국가들은 제4차 중동전쟁의 승리를 위해 그 전과는 다른 한 가지 작전을 개발했다. 바로 중동 국가들이 갖고 있는 석유를 전략의 일부로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전쟁에 나선 중동 국가들은 단결해서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나라들에게는 석유를 팔지 않겠다며 석유 공급을 조절했다. 석유 수출 국가 기구인 OPEC의 회의가 세계 각국에 관심을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도 바로 이 때의 일 때문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석유는 쓰기 좋고 흔한 자원이었다. 석유는 돈만 주면 언제나 값싸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이 산업과 경제의 상식이고 전제였다. 그러나 중동 국가들은 세상을 바꾸었다. 1960년대말과 비교해 보면 1970년대 석유 가격이 한참 높던 시절에는 가격이 무려 20배에 가깝게 올라 버렸다. 모든 산업을 유지하는데 석유가 필수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래서야 세계 어느 나라든 경제가 요동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사건을 흔히 오일쇼크라고 부르며, 조금 더 세밀하게 보면 1970년대 초와 말, 두 번에 걸쳐 발생한 것으로 구분한다.
오일쇼크의 충격은 굉장했다. 모든 물자가 넘쳐나는 풍요로운 나라라던 미국에서도 석유를 구하기 위해 주유소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늘어선 광경이 펼쳐졌다. 유럽 각국도 경제 발전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석유와 관련이 있는 모든 물건 가격이 올랐고, 석유와 관련이 없는 물건이라도 그 물건을 자동차나 배에 싣고 옮기기 위해서는 석유가 필요했기 때문에 가격이 올랐다. 영국 TV 방송에서는 “팔리지 않는 자동차가 무덤의 묘비처럼 늘어서 있다”고 오일쇼크 상황을 묘사했다. 경제가 튼튼한 편인 미국에서도 1년이 멀다 하고 10%가 넘는 물가 상승이 일어나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요즘 물가 상승이 힘들다지만 이 시기의 인플레이션은 굉장한 충격이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억이 얼마나 악몽 같았으면, 과학자들은 우주가 태초에 탄생한 직후 그 공간의 크기가 커지는 것에 대한 이론에도 그저 무엇인가가 아주 빠르게 커진다는 이유만으로 별 상관도 없는데 “인플래이션 이론”이라는 이름이 붙였을 지경이다.
한국이 입은 충격도 작지 않았다. 오히려 선진국들에 비해서는 더 큰 충격을 받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1970년대말 2차 오일쇼크의 충격이 커서, 1년 만에 물가가 40%가 올랐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였다. 돈이 있는 사람들 중에는 물건 가격이 오르기 전에 얼른 미리 사두자고 사재기에 나서는 이들이 있어서 물가 상승을 더욱 부추기는 문제도 생겨났고, 야심차게 투자했던 한국 중공업, 화학공업의 성장에도 큰 장애가 되었다. 옛날에 물건을 아껴쓰기 위해서 몽당연필을 볼펜 대에 끼워 쓰자는 이야기가 자주 나오던 시절이 있었는데, 바로 그 이야기가 한국에서 유독 널리 퍼지던 시기도 바로 이 무렵 오일쇼크 때였다. 넓게 보면, 1979년에서 1980년에 이르는 시기, 한국 사회가 여러 모로 혼란스러웠던 것도 그 배경에는 오일쇼크의 무시무시한 충격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오일쇼크 시기를 지나면서 세계 각국의 외교 안보 정책도 바뀔 수밖에 없었다. 긴 세월 유럽과 미국 여러 나라의 식민지배나 간섭을 받던 중동 국가들에서는 변화한 시대를 이용해 유럽 선진국들의 무릎을 꿇리는 데 성공했다며 감격하는 여론이 생겼다. 결국 이집트는 제4차 중동전쟁에서 확실한 승리를 거두었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이번만큼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으로 전쟁을 끝내는데 성공했다. 이후에도 이집트는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 시나이 반도 땅을 되찾았다. 전쟁이 끝난 후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다.
석유 가격의 요동 때문에 단단히 고생을 한 선진국들에서는 에너지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석유에 매달리지 않고도 산업을 유지하는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앞으로 40년 후면 석유가 바닥난다, 또는 60년 후면 석유가 정말 바닥난다는 이야기와 함께 대체 에너지를 개발해야 한다는 소식이 곳곳에서 활발히 나오던 것도 바로 이때부터다. 실제로 이후로 프랑스는 막대한 용량의 원자력 발전소에 대해 투자를 지속했고, 독일은 석유 대신 석탄으로 전기를 만드는 방법에 투자했다. 지금도 프랑스는 전력 생산에서 원자력 발전의 비중이 70%에 달하며, 2022년 상반기 통계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전기의 30%를 석탄화력발전소를 이용해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이것이 오일쇼크 때문에 고생했던 여파가 지금까지도 세계를 이끄는 선진국 산업계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증거라고 본다.
최근 다시 석유 가격, 천연가스 가격이 불안해지는 현상이 인플레이션과 겹치면서 세계의 경제지들은 1970년대 오일쇼크가 촉발한 인플레이션을 되돌아보는 기사들을 종종 내보내고 있다. 요즘의 인플레이션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직접 관련이 있는 만큼, 제4차 중동전쟁과 연결되어 있었던 1970년대 인플레이션과 닮은 점이 많아 보이기도 한다. 이번에도 미국과 유럽 각국의 경제 피해가 크며,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심각하다는 점에서도 1970년대 오일쇼크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느낌이 있다.
그러나 1970년대의 오일쇼크와 50년이 지난 2020년대의 인플레이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하나 있다. 바로, 2020년대는 기후변화 문제를 전 세계가 같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시대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기후변화 문제 최근 빠르게 발전한 기술 덕택에 우리는 석유에 덜 휘둘리는 대안을 개발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간단하게는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로 전기를 만들거나, 그렇게 얻은 전기로 수소를 만들어서 석유 대신 전기와 수소로 산업을 키워 나간다는 생각이 있다. 석유가 귀해져서 휘발유를 구할 수 없게 된다면 휘발유차로 재료와 상품을 실어 나르는 회사는 망하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재생에너지나 수소가 충분히 퍼져 있는 세상이라면 전기차, 수소차를 활용해 충분히 사업을 해 나갈 수 있다. 그렇다면 재생에너지 기술, 수소 기술을 갖추어 놓는 것은 그만큼 외국의 석유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이다. 게다가 이런 기술은 애초에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필요한 기술이기도 하므로 환경을 위해서도 꾸준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 즉 평소에 꾸준히 투자해 놓은 기후변화 대응 기술이 경제 위기를 돌파하는 도구가 되어 줄 수 있다.
좀 더 정교하게 살펴 보자면, 과거에 사용하던 에너지 자원을 시대에 맞게 더 효율적으로 개발해서 쓰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연료를 쓰는 도중에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도로 빨아들여 모아 두고 저장해 놓는 기술을 CCS라고 부르는데, 이런 CCS 기술은 다양한 연료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석탄, LNG 등 여러 종류의 화석 연료를 이용해 기계를 돌리거나 전기를 만들어 활용하는 기술은 태울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가 많아서 그 이산화탄소가 기후변화를 악화시킨다는 문제에 대한 지적을 받게 된다. 그런데 만약 이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없앨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그런 지적에 답이 될 수 있다. 그 만큼 다양한 연료를 좀 더 마음 놓고 쓸 수 있게 되므로 한 가지 연료에 얽매이는 위협에서 더 쉽게 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조금 색다른 방향으로는, 세계 각지에 진출해 다양한 자원을 한국 기업이 직접 개발하고 그것을 들여 오는 여러 경로를 미리 만들어 두는 방안도 있다. 이 역시 몇몇 나라의 석유 가격에 얽매여 받는 고통을 줄이는 길이고, 자원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한 발 더 나아가서 CCS 기술과 수소 기술을 조합해서 더 실용적이면서도 더 다양한 에너지 확보 방안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CCS를 이용해서 저탄소 LNG를 이용해 수소를 생산하고 그 생산 과정에서 생기는 이산화탄소도 도로 빨아 들여 놓는 방안을 생각해 보자. 이것은 석유 보다는 더 많은 나라에서 구할 수 있는 LNG를 확보해서 그것을 이산화탄소에서 벗어난 연료인 수소로 바꾸는 작업으로 볼 수 있다. 이 수소는 그대로 태워서 연료로 사용할 수도 있고, 수소연료전지 기술을 이용하면 전기를 만들어 더욱 더 폭넓은 용도로 쓸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더 많은 경로로 얻은 에너지 자원을 더 쉽게 여러 분야에 쓰는 길을 찾는 것이야 말로 환경 문제와 에너지 안보 문제를 동시에 푸는 길이다.
과거에는 환경문제에 대해 대비하기 위해서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고, 내가 더 비용을 들이고 고생을 하면서 희생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가 많았다. 미래의 문제에 미리미리 대비하고 공동체 전체의 이익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환경문제에서는 그렇게 불편과 희생이 필요한 점이 있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만큼, 그 불편과 희생 때문에 환경문제를 풀어 나가는 일에는 선뜻 동참하기가 어렵고 투자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환경문제를 풀어 가는 방법 중에는 반드시 그렇게 불편과 희생이 필요한 분야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환경문제에 대한 투자가 동시에 나에게 경제적인 이익으로 돌아오는 분야도 분명히 찾아보면 찾을 수 있다. 나는 이런 분야를 “꿩먹고 알먹고 환경보호”라고 부른다. 꿩먹고 알먹고 환경보호는 당장 나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참여하기도 쉽고 투자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는 분야다. 나는 우선 이런 꿩먹고 알먹고 환경보호에서부터 먼저 앞서 나가는 것이 환경을 지키고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빠른 행동에 나설 수 있는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보면, 한국에서 에너지 안보 문제만큼 꿩먹고 알먹고 환경보호가 잘 들어 맞는 일도 없다. 한국인이라면 그야말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많이 들어 본 말이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라는 표현일 것이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재생 에너지, 수소, CCS, 저탄소 LNG를 발전시키는 것은 그만큼 석유 수입을 줄이는 방법이다. 말을 바꾸면 한국에서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투자가 그냥 환경보호를 막기 위해 아깝지만 들여야 하는 돈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경제 위기에 빠지지 않기 위해 안전 장치를 만드는 작업이다. 석유 가격이 조금 출렁이기만 하면 주식 가격이 무너지고 채권 시장이 흔들리며 온 국민이 겨울철 난방비 걱정 때문에 덜덜 떨어야 하는 걱정스러운 시대에서 가뿐하게 벗어나는 방법도 바로 에너지를 구하는 다양한 길을 넓히는 기술에 있다. 한국은 석유가 없기 때문에 유독 고민이 많은 곳이지만, 그렇기에 석유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투자에 고민 없이 나설 수 있는 나라다.